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 (문단 편집) === 식사와 보급품 === >다들 어찌나 배가 고팠는지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단다... 아침 식사라고 해봐야 기껏 뿌리에서 짜낸 씁쓸한 차뿐이었어. 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났어. 그래야 화장실을 갔다 와도 차를 배급받을 수 있었거든. 하루 한 번 [[순무]] 수프를 배식했어. 줄 맨 앞 가까이 서면 좋지 않았단다. 국물뿐이었거든. 줄 끝 근처가 좋았지. 바닥의 건더기가 떠올랐거든. 하지만 너무 뒷쪽도 좋지 않았단다. ...국물도 없을 때가 많았거든. 그리고 하루 한 번 모래처럼 까실까실한 빵조각을 줬지. 밀가루에 [[톱밥]]을 섞은 거야. 그 조그만 조각으로 종일을 버텨야 했어. 대부분 바로 해치워 버렸지만 난 늘 나중을 위해 반을 남겨뒀어. 그리고 저녁엔 상한 치즈나 잼을 먹었지. 재수 좋으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내 손가락 두 개만한 소시지를 먹기도 하고. 우리가 먹은 건 이게 겨우 전부였어. 그들이 주는 만큼만 먹었다간 서서히 죽어가기에 딱 맞았어. >----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쥐]] 2부 2편 中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사람들 대부분은 혹독한 강제 노동 현장이나 가스실에 끌려가 살해당했지만, 수용자들에게 제대로 된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중요한 간접적인 사인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수용자들에게 하루 약 800~1,200 kcal를 공급했는데, 이는 평균적인 성인의 [[기초대사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으로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사무 업무만 하는 사람에게도 모자란 수준이었다. 수용소에서 강제되는 노역의 강도를 생각하면 수용소의 배식량은 그냥 천천히 야위어 가다 굶어죽으라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로 배식되는 품목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 '''[[톱밥]]이 대량으로 섞인 빵''' 당시 나치 독일은 열악한 군수사정으로 자국 민관에 배급하는 빵에도 톱밥을 넣어 양을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수용소 유대인들에게 주는 빵은 이것보다 더욱 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케르테스 임레는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 수감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운명>에서 지푸라기가 씹히는 묘한 빵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 '''경비대원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로 끓인 묽은 야채 국''' 수용소 경비병이나 근무자들의 식사로는 군용 건조 야채를 사용한 국이 주어지곤 했는데, 이 건조 야채는 질도 안 좋고 식감은 더 안 좋아서 근무자들에게 '철조망'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여기서 '''쓰고 남은, 혹은 상해서 빼둔 찌꺼기들'''로 수용자들에게 주는 국을 만들었는데, 이마저도 물을 마구 때려부어 끓인 탓에 최소한의 맛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운명>에 서술된 표현을 빌리자면 도저히 삼킬 수 없는 맛을 가졌다고 한다. >(전략)... 가죽장이가 먼저 맛을 보았다. 야릇한 표정이었다. 수저를 받아 입에 넣는 순간, 도저히 삼킬 수 없는 맛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구 토해 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중략) "이게 바로 그 말린 야채 수프라는 거지."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이전의 전쟁]]과 지금 [[제2차 세계 대전|진행중인 전쟁]]에 참전했었다고 한다. 그것도 장교로서 말이다. "거기서 이 음식을 질리도록 먹어 볼 기회가 있었지. 우린 독일군과 함께 전선에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루타바가|이런]] [[쓰레기|걸]] 먹더라고." ...(후략) (운명 - 임레 케르테스 중에서 발췌)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쥐]]에서는 무와 채소를 넣은 수프를 배급했다고 나오며,[* '운명'에서 아우슈비츠 이후 대목을 보면 사료용 무와 알줄기 양배추로 만든 수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수용소의 식사는 대체로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마저도 매일 지급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책에서 서술한 바에 따르면 묽은 국이 배급되었다는데, 앞줄에 서면 건더기 없이 국물만 있었다고 하며 그렇다고 너무 뒤에 줄을 서면 아예 남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 이와 관련된 일화가 몇 개 언급된다. 그 중 한 이야기에 따르면, 묽은 국을 배급받을 때는 배급하는 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만 '''국자를 밑바닥까지 내려서 퍼온 국'''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저 상한 야채국의 건더기조차 제대로 못 먹는 자들도 많았다는 것. 이런 식사를 하다 보니 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라도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운명>에서 서술된 또다른 부분을 보자면,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사흘 째 되던 날에는 수프를 먹었고, 그 이튿날에는 심지어 기다리기까지 했다." (중략) "점심 식사는 수프였는데, 놀랄 정도로 이른 시간에 나왔다. 이어, 해거름까지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다가 점호 전에 빵과 마가린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며칠이 지나자, 배고픔의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형편없는 식사조차도 주는 간격을 매우 띄워서 굶주림의 고통을 극대화했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화자는 곧 같이 수감된 사람들과 함께 부헨발트로 옮겨갔지만, 다른 수감자들은 계속 쭉 이런 생활을 겪었을 것이다. 부헨발트도 강제 수용소라는 건 변함없지만, 이쪽은 주 목적이 학살보다는 강제 노동이었던지라, 곤궁하지만 아우슈비츠보다는 나은 수준의 식사가 배급되었다고 적고 있다. * '''저급한 [[대용 커피]].''' 원래 대용 커피는 적당히 구운 곡물 등 멀쩡한 재료로 잘 만들면 나름 괜찮은 풍미를 가진 물건이다.[* 독일군이나 독일 치하의 민간인들은 이런 대용 커피에 설탕 등을 타서 그럭저럭 커피라고 마시고 살았다.] 그러나 수용자들에게 제공된 것은 완전히 썩어서 스프로 내줄 수도 없는 야채 쓰레기들을 태워 잿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내준 것이었다. 설탕 같은 귀중품이 지급될 리도 없으니 그냥 잿가루 섞은 뜨거운 물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겠다면서 이 커피를 마시지 않고 세수하거나 양치하는 데 쓴 수용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놀랍게도, 살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커피를 마신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한 데 비해 존엄을 지킨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 '''[[담배]]''' 조금. 아우슈비츠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매주 3개비의 담배를 지급했다.[* 교도소에서 담배가 금지된 것은 생각보다 역사가 짧다. 심지어 현대 독일에서도 주마다 다르지만 상당수의 교도소에서 흡연을 허용하고 있다. [[https://en.m.wikipedia.org/wiki/Smoking_in_Germany|출처]] ] 그리고 이 담배는 [[대체화폐]]처럼 사용되었는데 수용자들은 이를 모아 빵으로 바꾸어 먹을 수 있었다. 담배 3개비면 하루분의 빵과 같았고, 숟가락도 하루치 빵의 절반과 바꾸어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혹은 아우슈비츠에는 주변에서 징용되어 일하러 온 폴란드 주민들이 있었고 주민들에게 담배 혹은 다른 귀중품을 주고 계란이나 치즈 같은 고급식품을 구매했다. 정말 성격이 독한 수용자는 이걸 200개까지 모아서 보드카 1병과 바꾸기도 했는데 이 보드카는 주로 카포나 군인들에게 줄 뇌물로 이용되었다. (출처: 아트 슈피겔만, '쥐') 식사도 굶어죽을 수준으로 주는데 생존과 관계없는 담배를 주는 게 의아할 수 있지만, 아주 낮은 비용으로 노동 의욕을 올릴 수 있어서 각국 군대, 교도소, 수용소 등에서도 상당히 최근까지 배급한 게 담배다. 그러나 담배가 필수품에 가깝던 시대에 한 주에 30개비도 아니고 3개비는 확실히 사람 대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었다.[* 일례로 담배를 극혐한 히틀러는 군인들에 주는 담배를 매우 적게 주었는데 그래도 '''하루에 7개비'''는 주었다. [[전투식량/독일군#s-1]] 참조.] 이런 식사를 하며 몇 주만 지내도 건강에 치명적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달도 버티지 못 했다. 죽기 전에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지만, 너무나도 약해진 건강 때문에 고향에 도착하지 못하고 이동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례도 상당히 많았다. 또한 카포와 군인들의 신발은 가죽제였지만 수감자들의 신발은 나무로 만들어진 나막신이었다. 그나마도 크기고 나발이고 아무렇게나 막 지급했기 때문에 신발이 맞지 않아서 맨발로 다니는 수감자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